CA 보카 주니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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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르헨티나에서 가장 성공적인 축구 클럽 중 하나이며 주요 대회에서 48개의 타이틀[3] 을 획득하였다. 국제 타이틀 수는 AC 밀란과 함께 세계 최다이다. 18개 내역은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6개, 레코파 수다메리카나 4개, 인터컨티넨탈 컵 3개, 코파 수다메리카나에서 2개, 코파 데 오로에서 1개, 수페르코파 수다메리카나에서 1개, 수페르코파 마스테르스 1개이다. 또한 남미 축구 연맹 주최 대회 3관왕을 달성한 적이 있는 8클럽[4] 의 하나이다. 국제 축구 역사 통계 연맹(IFFHS)의 클럽 세계 랭킹에서 6번 1위를 차지하였고, 그 대부분을 카를로스 비안치 감독하에 기록하였다. IFFHS는 21세기 첫 10년 간의 남미 최우수 클럽으로 보카 주니어스를 선출하였다.
1군 팀과 리저브 팀이 나이 제한이 없는 프로 계약이며, 아마추어 계약의 팀도 존재한다. 20세부터 14세까지의 선수는 6개로 분할된 연령별 카테고리에 소속되며 13세에서 6세까지의 선수는 7개의 카테고리로 나누어진 클럽 파르크[5] 라는 팀에 소속되어 있다.
2. 역사
2.1. 탄생
1905년 4월 3일, 라보카 지역에 사는 5명의 이탈리아 이민자에 의해 설립되었다. 라보카 지역은 이민자들이 많이 사는 부두 지역이다. 영국 출신 철도 노동자들이 처음으로 아르헨티나에 축구를 전파했기 때문에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아르헨티나이지만 축구 도입 초창기에 결성된 구단의 팀명에 영어를 사용하는 게 당시에는 일반적이었다. 그래도, 스페인팀이라고 하여 보카 후니오르스라는 스페인 발음으로 종종 부르기도 한다.
3. 홈구장 - 에스타디오 알베르토 J. 아르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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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유니폼과 엠블럼
첫 번째 유니폼 색상은 분홍색이지만, 곧 분홍색을 버리고, 가는 흑색과 백색의 줄무늬로 변경되었다. 1906년 보카는 흑백의 유니폼을 입고 경기에 자꾸 패하자, 라보카 지역의 항구에 처음 온 선박의 국기 색상으로 유니폼 색상을 변경하기로 결정하였다. 이후 스웨덴 국적의 화물선이 코펜하겐에서 와서 이 화물선에 달려 있던 스웨덴 국기의 노란색과 파란색을 클럽 색으로 선정하였다. 변경 후 첫 유니폼은 노란색 띠가 비스듬하게 들어가 있었지만, 후에 가로 줄무늬로 변경되었다.
엠블럼은 시대마다 소소한 변화를 겪고 있으며, 현재의 모델은 6번째이다. 1955년에는 창단 50주년을 기념해 월계관 잎이 더해져 엠블럼의 색이 유니폼 색에 맞춰졌다. 1970년 클럽이 획득한 수많은 국내 타이틀을 의미하는 별이 상단에, 수많은 국제 타이틀을 의미하는 별이 바닥에 덧붙여졌다. 보카가 국내 타이틀을 획득할 때마다 별의 수가 증가해 현재는 66개의 별이 엠블렘에 붙었다.
5. 별명
20세기초, 라보카 지역에 많이 살고 있던 이탈리아 제노바 출신 이민자들이 클럽을 설립했기 때문에 보카의 지지자들은 로스 세네이세스(Los Xeneizes, 제노바 사람)라고 불린다. 라이벌 클럽의 많은 지지자는 보카 서포터들을 로스 보스테로스(Los Bosteros, 말똥 청소부)라고 부르며 경멸한다. 현재는 라 봄보네라가 서 있는 장소에 일단 벽돌 공장이 있고 벽돌의 재료로 말똥이 사용된 것에 유래한다. 원래는 라이벌 서포터가 보카 축구를 모욕하기 위해 생산한 닉네임이지만, 보카 축구는 이제 별명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클럽 색을 반영하여 보카의 유니폼은 라 아술 이 오로(La azul y oro, 청색과 금색)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서포터 조직 중 가장 큰 것이 라 누메로 도세 또는 라 도세(La número 12, 12번째 선수)이다. 보카 축구를 유명하게 만든 이 이름의 유래는 1925년 유럽 투어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 투어는 빅토리아노 카파레나(Victoriano Caffarena)라고 불리는 부유한 보카 팬들이 동행하며 그들은 투어의 자금을 대주고. 투어 중간에도 모든 면에서 선수를 지원하고 선수와 강한 신뢰 관계를 구축하고 "12번째 선수"라고 불리게 되었다. 팀이 아르헨티나에 귀국해서도, 카파레나는 선수 같은 존재로 알려졌다. 오늘이 별명은 라 도세(La 12)라는 축구 팬을 호칭할 때 가장 먼저 사용된다. 보카의 라이벌(주로 리베르와 라싱)은 보카에 대해 볼리비아노스(Bolivianos, 볼리비아 사람) 또는 파라구아요스(Paraguayos, 파라과이 사람)라고 부르며 경멸하며 이러한 차별적인 호칭으로 수많은 경기가 중단되곤 한다.
6. 라이벌
보카는 오랫동안 CA 리버 플레이트와 라이벌 관계에 있어, 양자의 대전은 엘 수페르클라시코 라고 불린다. 양 클럽은 모두 빈곤층이 많은 강변 지역인 라보카 지구에 기원을 가지지만, 1923년 리버는 부유층이 많은 도시 북부의 누녜스 지역으로 연고지를 이전하였다. 수페르클라시코는 세계에서 가장 격렬하고 가장 중요한 더비의 하나라고 알려져 있다. 영국 옵서버지는 죽기 전에 봐야 50가지 스포츠 이벤트 1위로 (라 봄보네라에서 열리는) 수페르클라시코를 선정하였다. 서포터의 열정은 주목할 만하며 두 클럽의 서포터가 진을 치면 스탠드에 불꽃놀이, 화려한 색종이 클럽 깃발, 종이 롤이 등장한다. 양 서포터는 유명한 록 밴드의 음악을 기반으로 한 노래를 부르며 노래에 따라 팬들이 일제히 뛰는데 스타디움 전체가 진동한다. 경기는 종종 폭동으로 발전하고, 두 클럽의 서포터끼리 서포터와 경찰이 충돌하기도 한다. 무승부 이외에 끝난 경기 후에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거리는 패자를 조롱하는 많은 포스터로 가득 차 있다. 이것은 보카의 승리가 계속된 1990년대 이후 확산되어, 지금은 부에노스아이레스 문화의 하나가 되고 있다.
프리메라 디비시온에서는 200경기 가까이 더비가 치러졌고, 다른 경기들까지 포함하면 300경기 이상이 열렸다. 더비의 전적은 보카가 다소 우세하다. 치열한 라이벌 의식에도 불구하고 가브리엘 바티스투타, 클라우디오 카니자 등 두 클럽 간 이적 사례가 있다.
그리고 CA 인데펜디엔테, 라싱 클루브, CA 산 로렌소 등 빅 5끼리의 대전도 시코라고 하여 관심을 모으고 있다.
7. 주요 출신 선수
- 델핀 베니테스 카세레스(1932~1939)
- 도밍고 타라스코니(1922~1932)
- 디에고 마라도나(1981~1982, 1995~1997)
- 라몬 무티스(1923-1932)
- 로베르토 체로(1926~1938)
- 마누엘 플레이타스(1927~1931, 1933~1936)
- 아메리코 테소리에레(1916-1920, 1922~1929)
- 페드로 칼로미노(1911~1912, 1913, 1915~1924)
- 프란시스코 바라요(1931~1940)
- 후안 로만 리켈메(1996~2002, 2007~2014)
- 마르틴 팔레르모(1997~2000, 2004~2011)
- 카를로스 테베즈(2001~2004, 2015~2016, 2018~)
- 프레디 구아린(2005~2006)
- 다니엘 오스발도(2015, 2016)
- 다리오 베네데토(2016~2019)
- 다니엘레 데 로시(2019)
- 에두아르도 살비오(2019~)
- 마르코스 로호(2021~)
- 로드리고 벤탄쿠르(2015~2017)
8.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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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단에서 여성 치어리더 팀을 별도로 운영하고 있다.
- 1995년 당시 한국에 내한하여 한국 축구 대표팀과 친선경기를 펼쳤는데(결과는 보카 주니어스의 2-1 승리), 당시 마라도나는 조국의 라이벌 브라질의 펠레측이 일본을 월드컵 개최지로 밀어주자 이에 대한 반대급부로 한국의 개최를 지지하였다고 한다. 사실 2002 한일월드컵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유치 과정에서 수많은 각국 축구협회간의 알력다툼이 있었다.